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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개의 부여국이 있고, ①북부여(전기 부여), ②부여(후기 부여), ③동부여, ④졸본부여, ⑤남부여 등 5개의 부여국 중 최초의 국가가 북부여라는 것, 북부여는 해모수가 서기전 419년에 건국한 국가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2. 동부여는 부여의 마지막 왕인 해부루왕이 북부여 땅을 빼앗기고 동쪽의 흑룡강성 동남부ㆍ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옮겨가서 건국한 국가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3. 부여(후기 부여)는 서기전 100년경, 동명제가 해부루왕으로부터 북부여 땅을 빼앗아서 건국한 국가로서 서기 494년 고구려에게 흡수 통합된 국가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4. 서기 22년 고구려에게 복속된 동부여의 100년 이상의 역사는 부정되고, 이 동부여가 서기 494년 고구려에 통합하는 부여로 왜곡됨으로써 북경 북쪽ㆍ하북성 북부, 요녕성 북부, 내몽고, 몽고 동부, 동부 시베리아 지역 등의 광활한 지역을 영토로 하였던 북부여ㆍ부여의 역사가 말살되었고, 때문에 고구려 영토도 요하 동쪽의 작은 나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5. 부여는 그 왕들의 장례에 중국의 황제의 장례에만 사용되던 수의인 옥갑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나라 황제들이 언제 서거할지도 모르는 부여왕을 위하여 옥갑을 미리 만들어 현도군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부여왕이 서거하면 즉시 수의로 사용하도록 할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진 나라였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6. 이러한 앞 ➀~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국사를 편찬하기 때문에 부여는 1세기가 되어야 왕을 칭하고 반농반목의 작은 나라로 왜곡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7. 고구려가 국시로 내걸었던 ‘고토수복(다물)’ 대상은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낙랑군, 현도군 등의 영역이 아니라 해부루왕이 동명제에게 빼앗긴 북부여 영토를 되찾는 것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8. 평양 지역의 최씨낙랑국이 낙랑군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9. 4세기 후반까지도 압록강 유역의 작은 나라로 왜곡되어 온 고구려는 건국 초기에 이미 한반도 북부에 있던 동옥저, 개마국, 낙랑국 등과 길림성, 흑룡강성, 러시아 연해주에 있던 읍루(말갈), 북옥저, 동부여 등을 정복한 강대국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10. 때문에 고구려 모본왕이 서기 49년 중국의 중심부인 태원까지 점령할 수 있었고, 서기 54년에 태조왕이 요하의 서쪽에 10개의 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였다는 것, 낙랑군ㆍ현도군이 차지한 옛 땅을 되찾고, 요동군을 흡수하고, 부여와 통일을 이룩한 고구려 전성기의 영토는 천진ㆍ북경의 동쪽으로부터 내몽고, 몽고 동부, 시베리아 동부, 연해주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11. 고구려는 부여와 통일한 서기 494년 이후 부여 유민들과 융화를 위하여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 고주몽을 부여(후기 부여)의 시조인 동명제(동명성왕)인 것처럼 조작하게 되었고, 고구려와 부여의 통일로 부여족의 일원으로서의 생존을 위협받게 된 백제는 부여족의 적통을 이었다고 대내외에 과시할 절박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538년에 성왕이 국호를 백제에서 남부여로 고치고, 백제가 2세기에 부여왕으로 재위한 위구태왕(위구대왕)의 후손인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게 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12. 부여는 서진 말기인 서기 300년경에 중국의 하북성 천진ㆍ당산 지역으로부터 장강(양자강) 남쪽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식민지로 지배하던 강대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13. 부여는 수많은 왕과 제후들을 거느린 황제국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 연구 내용.


14. 고구려의 수나라를 먼저 공격하였다는 기록은 조작된 기록이라는 것, 수나라가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기습 공격하였다가 전멸당한 ‘무오戊午(서기598년)전쟁’부터 당나라가 고구려 왕조를 무너트린 ‘무진戊辰(서기668)전쟁’까지 수ㆍ당나라가 왕조를 이어가며 71년 동안 침략한 전쟁은, 고구려의 영토인 평양ㆍ평안도 지역이 낙랑군 영역이었고 요동반도 지역이 요동군 영역이라고 왜곡된 역사를 배운 중국인들이 중국의 고토를 수복한다는 명분으로 벌인 고토수복전쟁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15. 『부여ㆍ고구려ㆍ백제사 연구』와 『한사군의 실제 위치 연구』에서 만주족(숙신→읍루→물길→말갈→발해→여진→만주족)은 부여, 고구려, 백제인과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과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