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세 단군 왕검이 건국한 단군조선(고조선)이 기자조선에 멸망당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2. 기자조선은 존재한 적도 없었던 국가, 모화ㆍ사대주의자들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던 국가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3. ‘기자箕子’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기箕나라의 군주로 작위가 자작’을 가리키는 칭호로서 수명, 혹은 수십명의 기자가 있었을것이고, 1세 기자의 이름은 ‘서여胥餘’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4. 1세 기자인 서여가 무왕으로부터 봉해진 땅은 하남성 상구시에 있던 ‘조선朝鮮’이라는 50리의 작은 땅이고, 그 나라 이름이 ‘기箕’였다는 것, 기자가 동쪽으로 와서 조선의 군주가 되었고 동이인들을 교화시켰다는 역사왜곡은 반고의 『한서』『지리지』 의 기록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체계화되어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5. 1세 단군 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을 뒤이은 중조선(종래 기자조선)은 평양지역에 있던 작은 나라가 아니라 신시ㆍ단군조선의 후예들이 건국한 수많은 열국들 중 하나인 서부변경지역인 북경ㆍ하북성에 있던 국가라는 것, 중조선(종래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이 멸망한 서기전 425년 이후에 고죽국을 계승하여 건국된 국가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6. 기자동래설의 실증적 근거로 제시되어 온 요하 서쪽지역의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초기 청동기들은 기자동래설을 입증하여주는 근거가 아니라 8,000리 영토의 강대국인 1세 단군 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의 실존을 입증하여 주는 유물이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7. 중조선(종래 기자조선)이 연나라를 공격하여 땅을 빼앗은 역사가 반대로 연나라에 2,000리 땅을 빼앗긴 역사로 왜곡되어 왔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8. 위만의 망명, 위만의 봉지, 위만의 근무지, 반란과정, 준왕의 탈출 과정 등과 고대 중국 학자들의 증언으로 본 중조선과 후조선의 도읍인 왕험성은 평양지역이 될 수 없고, 하북성 창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9. 고대 한국의 부족ㆍ부족국가들의 맹주로서 하북성 동부ㆍ요녕성 서부지역을 영토로 한 후조선(위만조선)이 한반도 안의 약소국으로 날조되어 왔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10. 위만조선(후조선)의 수도는 평양에 있던 왕검성이 아니라 하북성 발해 북안 창려에 있던 왕험성이라는 것, 청천강 혹은 압록강으로 주장되어 온 패수는 하북성에 있었다는 것, 위만조선이 1세 단군인 왕검이 도읍했던 도읍지에 도읍한 국가로 왜곡하기 위하여 위만왕의 도읍인 ‘왕험성王險城’을 ‘왕검성王儉城’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 내용.
11. 한나라와 조선의 전쟁을 직접 지켜본 사마천이 증언한 조선의 영토크기, 수군의 공격로, 육군의 공격로 등과 한나라가 조선을침공할 때 조선의 방어군인 패수상군과 패수서군의 위치를 분석해본 결과 패수는 청천강이나 압록강일 수 없다는 것 밝혀낸 연구 내용.
12. 따라서 한반도는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 등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도 실증적으로 밝혀낸 연구 내용 등.